올해 우리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100여년의 역사는 식민지 지배와 해방, 분단과 전쟁, 그리고 개발독재로 점철된 질곡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갑오년에는 ‘제폭구민’의 깃발로, 기미년에는 ‘대한독립’의 함성으로 폭정과 외세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으며, 전쟁의 폐허 위에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과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습니다. 1960년 4·19혁명과 1970년대 유신반대투쟁은 1980년 5·18 민주항쟁과 1987년 6월항쟁으로 용솟음쳤습니다. 그리고 21세기의 전환기에는 시민사회운동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돼 촛불항쟁이라는 성숙한 광장민주주의를 꽃피우기도 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우리는 젊은 시절 거리와 삶의 현장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품었지만,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저마다 이마에 주름살을 새긴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형식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일상화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으며,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한반도 주변 정세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현실을 관조하고만 있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강원도는 금강산과 설악산, 오대산과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동으로는 드넓은 동해바다가, 서로는 산악지대가 펼쳐져 있는 천혜의 땅입니다. 그렇지만 강원도는 한반도 역사 이래 지정학적으로 늘 변방에 속해 있어 역사의 중심에서 소외된 지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강원도에도 갑오년에는 동학농민들이 강릉과 홍천에서 피를 뿌렸고, 을미년에는 의병의 궐기가 있었으며, 기미년에는 고을마다 만세 소리가 높았습니다. 민주화운동 시기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 원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이자 협동조합 운동이 만개한 지역이었고, 1980년대 춘천은 학생운동을 필두로 도내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태백에서는 사북항쟁과 성완희 열사의 희생이 말해 주듯이 광산노동운동이 불타올랐습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화운동은 풀뿌리 시민사회운동으로 계승·발전돼 참여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우리 강원지역도 그 흐름 속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편, 우리는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고 가치를 계승·발전시키는 일에는 소홀했습니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자랑스러운 역사는 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기록하고 계승하지 않는 역사, 미래로 이어지지 않는 역사는 망각과 단절된 과거로 남을 뿐입니다. 우리는 최근 민주주의의 퇴행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이 영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우리는 강원민주재단을 창립해 우리 지역의 민주화운동을 역사로 기록하고, 그 가치를 도민들과 함께 기념하고 공유함으로써 강원지역의 민주주의가 더욱 튼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남북으로 분단된 강원도의 현실에 천착해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고 민족의 번영과 통합이 조금이나마 앞당겨질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은 단지 과거의 역사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월의 무게를 벗고 다시 청춘의 마음으로 돌아가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힘닿는 대로 뛸 것입니다. 우리의 후대를 위해 우리가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민주재단 만세!
민주주의 만세!
한반도 평화 만세!
- 2019년 9월 28일 -